시크릿베일리

book 소개

  • 2024. 1. 18.

    by. 도니써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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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틀릴수도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도서의 책소개로 2022년 1월,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떠납니다’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거대한 애도의 물결이 스웨덴을 휩쓸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수많은 스웨덴인들을 불안에서 끌어내어 평화와 고요로 이끌었던 그는 루게릭병에 진단받은 후에도 유쾌하고 따뜻한 지혜를 전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도서의 책소개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에 대한 국내 독자들의 폭발적 반응 중에는 내지와 표지에 실린 그림에 대한 언급이 끊이지 않았다. “보는 것만으로 평온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림이 나올 때마다 멈춰서 한참 들여다봤다.” “나티코 작가님의 이야기에  더 깊이 몰입하게 되는 기분이었다.”이토록 독자들을 매료한 화가는 누구일까?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브리엘 마르케스가 극찬했으며 피델 카스트로가 소장했던 남미 현존 최고의 화가 토마스 산체스의 것이다. 거대한 자연의 풍광 속에서 하나가 된 아주 작은 인간을 담은 작품들은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의 가르침을 독자들의 가슴속에 더욱 깊이 새겼다.


      이번 토마스 산체스 에디션은 그와 같은 예술의 힘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되었다. 작품을 두 배로 수록했으며, 펼치는 순간부터 그림의 힘이 전해질 수 있도록 판형을 대폭 키웠다. 더불어 고급 MFC지를 사용해 작품이 비치거나 흐려지지 않고 채도를 온전히 반영하도록 했고 왜곡 없이 그림을 즐길 수 있도록 끝까지 펼쳐지는 환양장으로 제본하는 등 아트북에 준하는 사양으로 제작했다. 

       

      표지 또한 세 번의 수작업이 필요한 삼중바리 방식을 채택했으며 원가 때문에 책에 좀처럼 쓰이지 못하는 원단을 사용해 만지기도 따뜻하고 품위 있게 마감했다. 50년간 명상을 수행하며 맞닥뜨린 내면의 풍경들을 화폭에 담았다는 토마스 산체스의 작품과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의 이야기가 이루는 조화 속에서 이 책이 건네는 존재를 향한 위로와 지혜를 더욱 직관적으로 느껴보길 바란다.

       

       저자소개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Bjorn Natthiko Lindeblad) 

      1961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대학 졸업 후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며 스물여섯 살에 임원으로 지명되었지만 홀연히 그 자리를 포기하고 사직서를 냈다. 그 후 태국 밀림의 숲속 사원에 귀의해 ‘나티코’, 즉 ‘지혜가 자라는 자’라는 법명을 받고 파란 눈의 스님이 되어 17년간 수행했다.

       

      승려로서 지킬 엄격한 계율조차 편안해지는 경지에 이르자 마흔여섯의 나이에 사원을 떠나기로 하고 승복을 벗었다. 환속  후에는 사람들에게 혼란스러운 일상 속에서도 마음의 고요를 지키며 살아가는 법을 전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유쾌하고 깊은 통찰력으로 스웨덴인들에게 널리 사랑받던 그는 2018년 루게릭병을 진단받았다.  급격히 몸의 기능을 잃어가면서도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계속해서 전했던 그는 2022년 1월,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떠난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나티코의 이야기와 가르침을 담은 처음이자 마지막 책이다. 2020년 말 스웨덴에서 출간되어 독자들의 열광 속에 그해의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30만 부 판매되었고 세계 25개국에 판권이 수출되었다. 

       

       발췌문

      바라건대 이 책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삶을 더 순조롭게,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었으면 합니다. 이 책에 담긴 지혜  중 몇 가지는 제 삶의 중추였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죽을 날을 받아 든 지난 몇 년간은 더욱 그러했지요. 여기가 모든 것이 끝나는 곳이 될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시작하는 곳이 될 수도 있고요.


      우리는 누구나 생각을 내려놓을 능력이 있습니다. 다만 약간의 연습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 잠재된 능력을 무시하거나 아예

      잃어버린다면, 우리 삶은 여태까지 몸에 깊이 밴 행동과 관점에 좌우됩니다. 모든 결정을 습관적으로 내리게 되지요. 이를테면 과거에 목줄이 묶여 끌려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우리는 같은 트랙을 계속해서 돌고 또 돌게 됩니다. 그런 삶은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존엄도 품위도 없습니다.

       

      우리 자의 내면에는 정교하게 연마된 자기만의 조용한 나침반이 있어요. 그러나 그 지혜는 요란스러운 자아와 달리 은은해서 일부러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자아가 던지는 질문과 요구는 그보다 몇 배나 시끄러워 지혜의 소리를 완전히 묻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지 못할 때 우리의 관심은 언제 어디서나 가장 요란한 소리에 쏠릴 겁니다. 그렇게 되면 삶이 막장 드라마가 되어버립니다. 갈등에 끌리고, 불안과 불행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하고 집중하게 됩니다. 항시 현실과 투쟁하게 되지요.

      어떤 오클라호마주 출신의 승려는 무려 4년 동안이나 저를 몹시 싫어했습니다. 매일매일 조금도 감추지 않고, 쉬지도 않고  싫은 마음을 어떻게든 드러내곤 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삶이란 참 역설적이다 싶습니다. 저는 늘 남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나치게 신경 쓰며 살았습니다. 젊은 시절 제가 그토록 열심히 일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제게는 그처럼 저를 미워하는 사람이 필요했던 겁니다. 누군가가 저를 미워할까 봐 그토록 두려워했는데, 이유도 모른 채 그리 긴 시간 동안 끊임없이 미움을 받고 나니 그제야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사려고 애쓰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깨우친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자신이 더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살아가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틀릴 수 있어. 내가 다 알지는 못해’라는 생각에 익숙해지는 것만큼이나 우리가 확실하게 행복해질 방법은 흔치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을 탓하기 좋아합니다. 우리 중 많은 이가 이런 생각을 품지요. “만일 내 부모님이 다른 분이었다면… 직장 동료들이 못되게 굴지만 않았어도… 정치인들만 제대로 했어도….” 그런 굴레에 자꾸만 빠지는 인간의 속성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아의 근본적인 속성이거든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죠. 삶이 힘들어지고 심리적 압박을 겪을 때, 남을 손가락질하는 것이 훨씬 편한 데다가 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하지만 불쾌하고 불편하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나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해 바로 지금, 바로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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